[출발 이틀 전]
여행을 계획하면서 가장 설레는 순간은 가방을 꾸릴 때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티베트로 떠나기 이틀 전 감기에 걸린 것이다. 몸이 약간 으슬으슬하고 코가 막히는게 오랜 지병아닌 지병, 또 비염이 왔구나 생각했다. 여행 직전에 이런저런 일들로 무지 바빴던 내가 시간을 쪼개어 병원을 찾은 건 정말 다행이었다. (사실 겁이 많은 나는 긴 여행이나 출장을 떠날 때면 17세부터 다녔던 이비인후과를 찾아 미리 약을 넉넉하게 처방 받는다.)
서른 둘의 아줌마인 나를 여전히 초등학생 손녀 다루듯 늘 다정한 할아버지 의사선생님 말씀이 이번에는 비염에 더불어 감기까지 왔단다. 조금만 아파도 늘 학교에 가지말고 하루를 푹 쉬라고 말씀하시는 의사선생님께 오늘은 밥도 하지 말고 어떤 일도 하지 말고 약 먹고 푹 쉬라는 처방을 내리셨다.
“선생님, 제가 고산지대로 열흘 넘게 여행을 가는데 괜찮을까요?”
“아니, 이 겨울에 또 어딜가는 거야? 승희씨. 지난 달에도 갔었잖아?”
“네, 이번 달에도 또 가네요. 약을 좀 넉넉하게 처방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번에는 고산지대 어딜 가나? ”
“티베트요.”
선생님께서 먼저 깜짝 놀라신다.
“거기 겨울에는 엄청 추운데 아니야? 지난 여름에 내 친구가 티베트에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갔다가 고산증으로 귀신도 보이고 숨도 안 쉬어져서 죽을 뻔 했다고 하던데.”
“저도 이번에 베이스 켐프까지 가야 하는데, 괜찮겠죠?”
“고산지대에서 감기는 정말 큰 일 난다. 폐수종이 올 수도 있어요. 내일도 꼭 병원에 나오고, 티베트에 가서 먹을 약은 내일 넉넉하게 처방해 줄께.”
[출발 하루 전]
이번에는 여행에 가져갈 짐을 풀어 헤쳐놓고 걱정이 앞섰다. 겨우 해발 2,300m에 시닝에서, 해발 2,800m에 달하는 라브렁스에서도 심하지는 않았지만 가슴 답답함과 밤에는 머리가 두두두 울려서 잠을 쉽게 들 수 없었다. 이런 허접한 몸이 한 겨울에 5,200m에 달하는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까지 무사히 다녀 올 수 있을까?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짐을 꾸렸다. 긴 여행과 남편의 잦은 출장으로 짐을 싸는 것에는 이미 이력이 난 터. 그래서 짐을 싸는 것은 제대로 사진을 찍어 둔 게 없다. 한 달에도 두 번씩 짐을 꾸려 댔으니. 하지만 이번에는 아주 상세히 기록 해두고 싶은 마음이었다. 비록 떠나는 마음이 조금은 게운치 않은 면도 있지만, 티베트는 워낙 오래전 부터 꿈을 꿔오던 여행지였으니. 이번에는 짐을 꾸리는 것부터 아주 정성스레 사진으로 기록했다.
1. 의식주의 첫 걸음 ‘옷’싸기
옷을 쌀 때는 속옷은 속옷끼리. 양말은 양말끼리. 윗 옷은 윗 옷끼리, 바지는 바지끼리 정리를 해서 싸는 게 좋다. 여행을 자주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위 사진과 같은 옷을 전문으로 싸는 가방이 있을 것이다. 전용 가방을 이용해서 짐을 꾸리면 옷을 꺼내 입을 때 훨씬 편리하다. 그리고 아무리 긴 여행이라고 해도 바지는 3벌, 윗 옷은 4벌 이상을 넘지 않게 싸는 게 좋다. 속옷 팬티의 경우에도 3~4개 정도가 적당하다. 특히 겨울에는 속옷을 빨아서 널어 놓으면 다음날 뽀송뽀송 하게 마르기도 하고, 방안의 습도를 맞춰 주는 1석 2조의 역할을 한다.
가장 넉넉하게 준비 할 것은 양말이다. 양말은 머무는 날짜에 맞춰서 갯수만큼 준비를 하는 게 좋다. 오래 걷다보면 양말이 젖기도 하고 빨아서 널었을 때, 잘 안마를 수 있다. 물론 티베트는 건조해서 아주 잘 마른다. 그래도 냄새나는 양말은 빨고 싶지 않은 날도 있으니, 여벌을 함께 준비하도록 한다.
2. 겨울 여행의 필수품 – 바람막이, 온도 조절용
겨울 티베트는 생각보다 훨씬 따뜻하다.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하지만, 한국의 겨울 추위보다 덜 했다. 낮에는 마치 봄이 온 듯 오리털 파카가 더울 지경이었다. 가끔 점퍼를 벗어서 들고 다녔다. 때문에 모자를 착용한 경우는 적었다. 칭짱열차를 이틀 동안 타고 막 내렸을 때 머리를 감지 못해서.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에 갔을 때 너무 추워서. 티베트에서 다시 칭짱열차를 타고 북경에 도착한 날 역시 머리를 감지 못해서. 딱 세 번 뿐이었다. 그것도 추워서 모자를 쓴 경우는 딱 한 번 뿐이다.
하지만 장갑을 매우 유용했다. 아주 더러워질 때까지 열심히 끼고 다녔다. 아무래도 장갑을 끼면 손의 온도를 유지할 수 있어서 사진을 찍을 때 편리하다. 장갑은 겨울 여행에서 사진을 찍을 때 필수품이다.
3. 겨울 여행의 필수품 – 마스크 대용, 목도리 대용
내가 하기에는 아주 크다. 왜냐면 MR. 뚱이 애용하던 여행용품이다. 남편과 열흘 넘게 떨어져 있으면서 남편의 채취가 그리울 때 사용하려고 챙겼다. 요것도 아주 유용했다. 세수할 때는 머리띠 대용으로. 추울 때 바람이 불 때는 마스크 대용으로.
남편이 그리워서 사용하지는 않은 것 같다. 미안하다 MR. 뚱, 사랑한다 MR.뚱.
4. 겨울 여행의 필수품 – 정말 요긴한 ‘다리에 하는 토시’
출발하기 전날 마트에 갔다가 싸길래 하나 샀다. 그런데 이렇게 요긴하게 사용할 줄은 전혀 몰랐다. 내복을 입고 양말을 신고 다리 위에 저 토시를 하고 바지를 입으면 겉으로 보기에 전혀 티가 안 난다. 보온 효과는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조금 과장해서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에서 저 토시 아니었으면 동사할 뻔 했다. 눈물나게 고마웠던 내 토시. 왜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겨울에 내복을 입고 토시를 하는지 뼈져리게 이해할 수 있었다.
5. 세면도구 – 선크림, 마스크 팩 등
워낙 건조한 지역을 가다보니 수분이 많은 마스크 팩을 준비했다. 간단한 세면도구는 호텔 안에 모두 있지만, 칭짱열차를 타는 동안에 세면도구는 필수 준비물이다. 그리고 호텔에는 린스가 없으니 각자 취향에 맞춰 세면도구를 준비하면 된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면도구는 치실. 덧니가 심한 나는 늘 칫솔질을 아주 세심하게 하는 편이다. 화장솜도 넉넉히 준비를 했다. 스킨과 로션은 쓰던 것을 각각용기에 담아서 준비하고 들고 다니기 편한 가방에 잘 챙겨 넣었다.
6. 세면도구 – 수건은 여행전문 수건으로 준비
여행용 수건은 물기 흡수가 빠른 게 장점이다. 특히 머리를 감고 말릴 때 그 효과를 극대로 느낄 수 있다. 또한 젖어도 아주 잘 마른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7. 위생용품 – 물티슈, 생리대
중국 여행을 할 때 휴지는 현지에서 구입하지만, 풀티슈는 한국에서 꼭 사간다. 중국에서 파는 물티슈는 가격이 한국보다 많이 비싼편. 떠나기 전에 마트에 가면 특가로 나온 물티슈들이 많다. 아기용 물티슈가 피부에 자극도 덜하고 품질이 좋다. 그리고 장거리 여행 중에는 휴지보다는 물티슈가 활용도가 훨씬 높다. 더러운 탁자를 닦을 수도 있고, 손을 닦을 수 없는 곳에서 사용하기도 편리하다.
장거리 여행을 할 때 여성의 필수품 생리대도 한국에서 미리 구입해 간다. 중국에서 어학연수를 했을 때, 1년 동안 사용할 생리대를 한꺼번에 구입해 오는 친구들이 많았다. 나는 ‘중국에서 사면 되지’ 하고 하나도 준비해 가지 않았다. 그런데 같은 위스퍼라도 흡수력이 정말 달랐다. 그리고 낯선 곳에서 갑작스레 필요하게 될 수도 있으니 흡수력을 떠나서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 가는 게 편리하다.
8. 구급용품 – 비상약
장거리여행에서 혹시 필요할지 모를 구급약도 필수. 티베트 지역은 건조해서 눈에 관련된 안약을 많이 준비했다. 비염이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보통 비염은 코와 기관지뿐만 아니라, 눈까지도 알러지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갑작스레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아무때나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경우를 경험했을 것이다. 안약도 모두 병원에서 처방받은 것들. 인공눈물과 내게 맞는 알러지 반응에 필요한 안약으로.
그리고 가기전에 감기에 걸렸던 터라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들이 좀 많다. 의사선생님께서 고원에서 코감기약은 심장에 부담을 줄 수 있으므로 감기약에서 코감기약은 일부러 빼셨단다. 내용물은 액상 기침약과 내게 맞는 감기 처방약.
그리고 사진에 보이지는 않지만, 소화제와 지사제, 반창코을 준비했다. 그리고 옆에 달린 긴 막대는 내 안경에 맞는 나사를 조이는 미니드라이버. 책에 나온 고산증에 효과가 있다는 다이아막스는 병원에서 처방해 주지 않았다. 의사선생님 말씀이 다이아막스는 이뇨제로 고산증에 효과가 있다는 정확한 증명이 되지 않았다나? 그래서 북경에서 나중에 따로 홍경천을 구입했다.
9. 장거리 여행의 영원한 동반자 – 먹거리
중국에서 장거리 열차를 처음 타는 한국 사람들은 여러 번 놀랄 것이다. 그중에서도 중국인들이 펼쳐놓은 다양한 먹거리들. 훈제 닭 한마리부터 시작해서 닭발만 끊임없이 뜯어대는 여자들까지. 앉아서 하염없이 해바라기씨를 먹어대는 중국인들. 그중에서도 가장 놀랄 일은 ‘아, 중국에 이렇게 다양한 라면들이 있을 줄이야!’ 중국 열차여행의 필수품 라면은 다음에 소개하도록 하겠다.
나는 중국음식, 한국음식을 전혀 가리지 않는다. 한국사람이기에 한국 음식을 가장 좋아하지만, 15일 동안 김치 한 조각, 고추장 한 숟가락 없이도 중국음식을 중국 사람들처럼 먹어댄다. 하도 가리는 게 없어서 중국사람들이 내게 ‘너는 전생에 중국이었나봐’라는 말을 자주 한다. 언제부터인지 이건 한국음식, 저건 중국음식이라는 구별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열차에서 라면만 주구장창 먹기는 싫었다. 라면은 한국라면이든 중국라면이든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그리고 맛을 떠나서 중국에서 생산된 음식 자체에 다소 불신이 생긴 터라, 정말 중국에서 구입해야 할 과일과 음료수, 그리고 부피가 나가는 라면을 제외하고 간식거리와 주식거리를 한국에서 대부분 미리 준비했다.
저 위 먹거리 중에서는 즉석 북어국만 빼고는 맛이 정말 일품이었다. 20원짜리 도시락을 먹을 때 함께 먹으면 간단한 도시락이 일품정식이 된다.
10. 장거리 여행의 영원한 동반자 – 주전부리
북경에서 라싸까지 47시간. 장장 이틀에 달하는 시간을 기차 안에서 있으려면 간식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도 간식거리를 찾게 된다. 특히 요긴했던 간식거리는 육포. 달콤한 맛보다는 짭잘한 먹거리가 나는 더 땡겼다. 천하장사 소세지는 컵라면에 함께 넣어 먹어도 맛이 좋다.
이비인후과 의사선생님이 목이 아플때 카라멜 같이 빠는 먹거리를 먹는 게 좋다고 해서 약국에서 구입했다. 어린이 전용으로 나와서 무방부제라는 게 제일 마음에 들었다. 사실 내가 먹은 건 2알 뿐. 기차 안에서 중국 어린이들 마음을 사로잡은 방귀대장 뿡뿡이 덕분에 예쁜 아이들 사진을 맘껏 찍을 수 있었다.
11. 여행의 나침반 – 여행정보 책자
책 모으는 게 취미인 딴지여사. 여행에 어떤 책들을 함께 데리고 갈까 고민하고 고민했다. 그중에서 고른 책은 단 3권. 칭짱열차를 처음 타는 내게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자세히 안내해 줄 ‘칭짱철도 여행’. 그리고 론니플래닛을 가져갈까? 중국 100배 즐기기를 가져갈까? 수차례 고민하다가 중국 100배 즐기기로 결정. 론니와 100배 즐기기 모두 가지고 있는게 2006년 판이라서 칭장열차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었다. 그래서 큰 기대를 안 했다.
정말 기대를 안 하길 잘했다. 100배 즐기기 내용을 보고 현지에 가보니 잘못된 정보가 꽤나 많았다. 덕분에 같은 길을 몇 번이나 헤멨다. 또 덕분에 책 들고 길을 묻다가 중국 경찰과 친해지기도 했다.
티베트 정보에 대한 만족할 만한 책자는 지난 9월 북경에서 구입한 중국에서 발간한 책자. 현지에 대한 상세한 정보와 음식점 소개까지 올해 발간한 책이라서 그런지 책 내용과 현지의 상황이 완전 일치했다. 아쉬운 점이라면 내국인을 위한 책자라서 티베트 여행에서 필요한 통행증 발급, 허가서 등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가기전에 티베트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길’, ‘차마고도’가 티베트인과 티베트 문화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무거워서 가져가는 것은 포기!
12. 편리용품 – 선택은 자유! 준비하면 발이 편한 여행
장거리 기차 여행에서 또 하나의 필수품은 슬리퍼이다. 여름용 슬리퍼를 가져가기에는 발이 시려울 것 같아서, MR.뚱이 지난 출장에서 호텔에서 집어온 1회용 슬리퍼를 가져갔다. 기차 4인 1실 칸에는 위와 같은 슬리퍼가 준비되어 있다. 6인 1실을 타는 사람들은 각자 준비하면 된다.
한국에서 미리 준비한 것은 북경에서 라싸까지 갈 때 사용했다. 4인 1실을 사용하면서 슬리퍼가 준비된 것을 미쳐 발견하지 못해서 꺼내어 신었고, 라싸에서 북경으로 돌아오는 열차는 6인 1실을 타고 왔기 때문에 라싸에서 머물렀던 호텔에서 미리 가방에 하나 넣어 두었던 것을 요긴하게 사용했다.
13. 가방 꾸리기 – 도착해서 사용할 것과 기차에서 사용할 것을 구별해서 싼다.
장거리 기차 여행을 할 때 가방은 2개가 좋다. 딱딱한 하드 케이스에는 도착해서 사용할 물건들을 담는다. 주로 옷이다.
그리고 열차에서 사용할 세면도구, 먹거리, 휴지, 책, 필기구들은 배낭용 가방에 담는다. 그리고 여권과 현금을 넣어둘 복대를 따로 준비하면 좋다.
이제 배낭도 완벽하게 꾸렸으니, 출발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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