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이었다. ‘혹시나 못보고 돌아가는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호텔 창문으로 포탈라궁에 오르는 사람들이 보였다. 오후에 다시 문을 닫을까봐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다. 창밖 포탈라궁을 보고 마음이 더 급해졌다. 호텔 앞에서 박용걸씨를 만나 포탈라궁으로 향했다.
정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잰걸음으로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절로 웃음이 났다. 혹시나 전날처럼 일찍 문을 닫아버릴까봐 서두르는 폼이 우스웠다. 담이 이렇게 작아서 어디에 쓸까?
달라이 라마가 머물던 곳.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지어진 궁전. 라싸에 도착해서 내 심장을 가장 떨리게 했던 포탈라궁. 이 모퉁이를 지나면 웅장한 포탈라궁이 눈 앞에 나타날 거라는 상상에 얼굴이 상기됐다. 조캉사원이 티베트인들의 성지라면, 여행객에게 포탈라궁은 티베트의 상징이었다.
드디어 포탈라궁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어라!
이상하게 두근거리던 심장이 차분해졌다. 고분고분 말 잘듣는 순둥이 강아지처럼 얌전해졌다. 포탈라궁을 따라 포탈라코라를 돌던 티베트인들이 보이지 않아서 일까? 포탈라궁을 향해 짧지만 간절히 기도를 하던 티베트인들과 정성스레 오체투지를 하던 티베트인들이 없으니 지금 눈앞에 포탈라궁이 덜 대단해보였다.
거만한 딴지여사.
궁이란 그런 곳이다. 일개 소시민 신분인 내가 감히 넘나들 수 없었던 곳. 시대가 변하고 왕이 존재하지 않는 지금에와서야 관광지로 변해버린 궁에 관광객의 신분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일까? 맞다. 그래서다. 현지인이 없고 생동감있는 현재가 존재하지 않는 궁전 관람이 여행의 하일라이트가 될 수는 없다.
그래서,
막상 티베트에 오면 포탈라궁보다 조캉사원에 열광하게 된다. 여행객 중 열이면 열, 모두가 그럴거다. 끊임없이 코라를 돌고 멀리서부터 오체투지를 하러 온 티베트인들을 보며 처음으로 살아있는 티베트를 느끼는 거다.
“박용걸씨, 미안하지만 포탈라궁은 제가 혼자서 돌아보고 싶어요!”
주저리주저리 열심히 포탈라궁을 설명하는 박용걸씨 말이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참 이상한 일이다. 역사가 유구한 명승고적만큼은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걸 좋아하는데 말이다. 자연풍경이야 보여지는 그대로 느끼면 그만이지만, 명승고적지는 해박한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게 훨씬 도움이 되는 게 사실이다.
켁,
티베트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포탈라궁에서 호기를 부리다니. 그런데 꼭 그러고 싶었다. 주인 떠난 궁을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보기 싫었다. 혼자서 조용히 포탈라궁을 느끼고 싶었다. 설령 돌아가서 머릿속에 남는 게 하나 없더라도. 그래서 후회할지라도.
박용걸씨는 은근히 좋아하며 사무실로 돌아갔다. 전날 우리는 고주망태가 될 때까지 술을 마신 터였다. 고산증이 걱정돼서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다가 라싸를 떠나기 전에 미리 고마운 사람들과 한 잔 했다. 나는 정말 전생에 티베트인이었나보다. 아침에 읽어나니, 맑은 정신과 상쾌한 머릿속. 아무래도 전생에 티베트인이 아니라 술고래였나 보다.
포탈라궁에서 내려다 본 라싸시내. 눈부신 태양은 지금이 겨울임을 잠시 잊게 한다. 찬란히 빛나는 저 빛처럼, 겨울에도 봄처럼 따사로운 저 볕빛처럼 티베트에도 진정한 봄이 왔으면 좋겠다. 저 멀리 광장에 펄럭이는 빨간 오성기와 포탈라궁을 에워싸고 오늘도 어김없이 코라를 돌고있는 티베트인들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포탈라궁은 7세기에 처음 지어졌다. 토번을 통일한 송챈감포가 당나라 문성공주와 결혼을 하고, 수도를 산남지역에서 라싸로 옮겨왔다. 그리고 라싸 마부르산 위에 포탈라궁을 지었다. 그후 포탈라궁은 송챈감포 시대를 지나 오랜 시기에 걸쳐 끊임없이 증축이 이뤄졌다. 지금의 포탈라궁은 17세기 중엽, 5대 달라이라마가 집권한 후 50여 년에 걸쳐 증축을 한 모습이다.
포탈라궁 내부로 들어가면 을씨년스런 분위기가 풍긴다. 궁 바깥의 새파란 하늘과 대조를 이룬다. 두터운 벽과 작은 창문은 한줌 빛이 들어올 틈도 없는 궁전. 송챈감포를 시작으로 14대 달라이라마가 인도로 망명하기까지 약 1,300년에 걸쳐 9명의 티베트 왕과 10명의 달라아라마가 정교합일의 권력을 행사하던 곳. 그시절, 우울증에 걸리지나 않았는지.
공연히 박용걸씨를 일찍 돌려보냈나? 황금빛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달라이 라마의 영탑과 궁 내부의 화려한 벽화를 보면서도 어떤 감흥도 느끼지 못했다. 포탈라궁을 꼭 보고야 말겠다는 마음이 앞서서 서둘러 나오느라 안경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내 시력에 맞게 돗수가 들어간 선글라스를 끼고 궁 안을 들여다 보다가 지적도 받았다. 선글라스를 벗고 안보이는 눈을 가재미 눈으로 만들어 집중을 해도 안이 컴컴해서인지 내부는 잘 보이지 않았다.
겨울 포탈라궁에는 감시의 눈이 관광객 수보다 많았다. 조금만 한 자리에 서서 오래 보면 빨리 앞으로 가라고 보채는 사람. 혹시나 사진을 찍을 까봐 사진기를 감시하는 사람. 어디어디에 붙었는 지 파악할 수 없는 감시카메라들. 서둘러 궁궐 밖으로 나왔다. 이제야 가슴이 탁 트인다. 밑으로 용왕담공원이 보였다. 답답한 궁궐 안 보다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게 좋았다.
이제 포탈라궁과도 안녕이다. 이날이 지나면 티베트와도 안녕이다. 후회는 없다. 아쉬움도 없다.
티베트에 올 때 나는 이곳의 희박한 공기를 걱정했다. 그리고 희박한 공기만큼이나 희박한 자유를 애써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궁금했다. 여행자인 내게 티베트의 공기는 참 독특했다. 티베트가 내뿜는 자유라는 공기는 오로지 여행자만이 느끼는 감상적 공기일 테지만. 이곳의 자유로운 공기가 언젠가 나를 다시 한 번 이곳으로 인도하리라.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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