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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싸 시내 구석구석 활보하기

이번 여행 중 가장 난코스가 되리라 예상했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탐방도 무사히 마쳤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라싸로 돌아오는데 걸린 시간이 장장 13시간. 해발과의 싸움이 될 줄 알았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여행은 의자와의 싸움이었다. 허리를 곧추 세우고 13시간을 앉아서 오는 길. 차 안에서 잠들면 괜시리 기사에게 미안할 것 같아 눈을 말똥말똥 뜨고 창밖을 구경하는 게 일이었다. 그리고 다음날은 느즈막하게 일어나 티베트여행의 마지막코스, 포탈라궁에 가기로 박용걸씨와 약속했다.

그런데,
이게 뭔일인가?

오전 11시 경에 포탈라궁에 갔더니 문이 잠겨있다. 문이 열릴까 싶어 문 앞에서 기다리는데 중국어를 할 줄 아는 티베트인이 말했다. 방금 포탈라궁에서 나오는 길인데, 오늘은 포탈라궁을 관광할 수 없단다. 오전에 잠시 문을 열고 관광객을 받았는데, 무슨 일인지 오후에는 아예 폐관을 한다고 했단다.

뜨아아,
이러다가 포탈라궁도 못 보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아닌 지, 사뭇 걱정됐다. 만약 다음날까지 포탈라궁 문을 안 연다면, 정말 꼼짝없이 포탈라궁은 겉에서 본것으로 만족하고 돌아가야 할 판이다. 티베트인 순례자들에게는 조캉사원이 라싸의 중심이라지만, 그래도 관광객에게는 포탈라궁이 라싸 여행의 핵심이 아니던가.

다소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그것도 나의 연(緣)이고 운이라 생각하기로 맘먹었다. 부디, 내일은 문을 열기를 간절히 바라며 발길을 돌렸다.

갑자기 갈 곳을 잃었다. 물론 갑작스레 할 일도 없어졌다. 터덜터덜 항공호텔로 돌아와 창밖으로 포탈라궁을 바라봤다.

‘오! 주여~ 부디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 라싸에서 좋았던 기억만 간직하고 돌아가게 해주옵소서.’

,
하나님도 안 믿으면서 ‘주님’를 찾다니. 그것도 불교의 나라 티베트에서. 게다가 관세음보살의 화신 달라이 라마가 머물던 궁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아무튼 이제 특별히 할 일도 없어졌으니, 나 홀로 라싸 시내나 돌아다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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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여사가 머물렀던 항공호텔 주변

다시 호텔문을 나섰다. 목적지가 없다. 나를 부르는 곳도, 꼭 가야할 곳도 없었다. 아담한 라싸 시내에서 포탈라궁을 제외하고 관광객이 가야할 곳은 이미 다 돌아본 터였다. 이제부터 발길 닿는대로, 마음이 가라는대로 움직여 보기로 했다.

그래서,
우선 라싸에서 머무는 동안 가장 자주 오갔던 거리부터 기록하기로 했다. 하루에서 몇 번씩 오가던 길이라 변변한 사진 한 장 찍어두지 않았다. 그저 막연히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하는 생각에 스쳐지나기만 했던 거리를 사진으로 담으려니 마음이 새롭다. 어쩌면 한국에 돌아가서 그리운 라싸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날지도 모를 곳. 나의 채취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이곳을 잊지 않으려고 천천히 돌아봤다.

우리 호텔 옆에 야크고기를 파는 곳이 있었구나. 살가죽 벗긴 야크 한 마리가 처량맞게 가게 앞에 누워있다. 여러가지 잡다한 물건을 팔던 가게. 이집의 어린 딸이 중국어도 곧잘 하고 친철했는데. 그래서 생수는 꼭 이집에서 샀는데. 이제 물을 살 기회도 몇 번 남지 않았다. 가기전에 친철한 어린 딸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갔으면 좋겠다. 호수 수면 위로 드리워진 포탈라궁이 특히나 아름다운 용왕담공원. 포탈라궁 뒤에 어린이 놀이터가 왠지 동양화에 유화 물감을 잔뜩 칠해놓은 것처럼 어울리지 않았는데, 이날따라 유독 아름다워 보였던 호수. 라싸의 푸른 하늘, 맑은 하늘을 그대로 수면 위에 옮겨 놓은 것처럼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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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시내로 가는 길, 포탈라궁 주변은 대낮에도 코라를 도는 순례자들이 많았다. 이미 세상을 달관한 듯, 내일 아침이라도 하늘이 부르면 이생에 대한 아쉬움 없이 눈을 감을 것처럼 해맑게 웃어주던 할어버지. 주머니 속에 있는 마오를 모조리 꺼내어 할아버지의 파란 푸대자루에 넣었다. 여전히 같은 웃음으로 나를 바라봐 주시던 그 눈길이 따스했다.

포탈라궁을 향해서 길 건너편에서부터 기도를 올리던 아줌마. 라싸가 매력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종교와 생활이 일치되는 티베트인들의 일상. 욕심을 절제하고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티베트인들. 이방인의 눈에 비친 티베트인의 삶은 숭고했다. 물론 무엇이든 보는 것마다 아름답게 미화하려는 게 여행자의 기본적인 심리지만, 일상 속 그들의 삶은 여행자가 추구하는 이상향과 엇비슷한 점이 많다.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단촐한 차림으로 지구별여행자가 되어 살아가길 바라는 나와, 신앙으로 자신을 단속하고 단촐한 살림으로 생활하는 그들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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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기차역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아무래도 직업병이다. 라싸에서 베이징으로 가는 날, 다시 기차역에 오겠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아침이다. 퍼뜩 사진을 찍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유용하게 쓰일 것 같았다. 여행사에 근무할 때 관광지 입구나 기차역, 그리고 버스역 사진을 보물단지처럼 소중하게 여겼더니, 백수가 된 지금에도 직업병이 도진 것이다.

기차역을 왜 군인이 지키고 있는 지, 버스표가 없으면 왜 역 안에 들어갈 수 없는지. 라싸에서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것들이 아주 상식으로 통하고 있다. 기차역 옆에 위치한 장거리 버스터미널에는 버스표가 없다고 못 들어가게 하는 군인을 달래어 여권을 맡기고 들어갔다. 군인들도 보초 서는 게 심심했던 탓에 내 여권을 서로 보겠다고 아우성이었다. 군인들도 꽤나 무료했었나 보다.

89번 버스를 타고 기차역에서 시내로 돌아오는 길. 종착역 포탈라궁 앞에서 내리려고 했다가 노블링카를 보고 내렸다. 겨울이라 흥미가 덜했던 여름궁전을 다시 보고자 했던 게 아니다. 노블링카 옆 시외버스터미널에 가기 위함이었다. 시가체와 간체로 가는 버스가 바로 이곳에서 출발한다. 라싸 기차역 부근 장거리 시외터미널보다 이곳 시외버스터미널에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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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건너편 티베트 박물관에도 갔다. 겨울철 여행 비수기라 폐관이었다. 직업병을 100% 살려 박물관 사진도 찍었다. 혹시 MR.뚱에게 요긴하게 쓰일까 해서. 버스를 타도 되지만 호텔까지 천천히 걸어가야지 마음 먹었다.

길을 걸으며 눈에 번쩍 뜨인 것. 열려있는 맨홀뚜껑을 보니 섬뜩했다. 중국여행을 하면서 저 열려있는 맨홀에 빠질 뻔 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아찔했던 위험천만의 순간이 두 번이나 있다. 한 번은 산동성 제남에서 맨홀에 빠질 뻔 한 딴지여사를 MR.뚱이 힘센 두팔로 걷어올린 적이 있고, 한 번은 신장 위구르자치구에서 나라티초원 가는 길에 얕은 맨홀에 빠져서 다리를 다친적도 있다. 그때 뼈가 쑥 꺼진 곳이 아직까지 회복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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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전통복장 차림을 한 청년들이 일제히 한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무엇을 그렇게 재미나게 볼까? 나도 청년들의 시선을 따라 눈동자를 움직였다. 그들이 바라본 곳에는 어린 아이들이 신나게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다. 부러운 걸까? 한 번 타보고 싶어서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걸까?

21세기 최첨단 시대에 전통복장을 입고 여전히 30년~40년 전의 생활을 답습하며 사는 생활. 어쩌면 그들에게는 물음도 필요없고 답도 필요없는 일상이겠지만, 티베트에서 처음으로 ‘저들이 지금 전통이라는 명맥을 잇고 사는 삶이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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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곳을 여행하든, 배낭여행을 와서 딴지여사가 꼭 가는 곳이 있다. 그 지역에서 가장 큰 대형서점. 서점은 그 도시를 읽기에 안성맞춤이다. 서점에 책을 사러 혹은 읽으러 온 사람들이 많은 도시일 수록 생활수준도 높은 편이었다. 라싸의 서점은 조용하고 한적했다. 인구의 80%이상이 티베트인인데 책은 티베트어가 아닌 대부분 중국어로 된 책이니 누가 책을 사러 오겠는가?

이제, 라싸에 머물렀던 시간보다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짧게 남아있다. 다음날은 오전에 포탈라궁에 가보고 라싸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인 만큼 고마운 사람들과 함께 보내야 한다. 그 다음날 다시 47시간의 대장정 기차여행길에 오르려면 미리 먹거리를 마련해둬야 했다. 대형 슈퍼마켓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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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대형마트에는 한국제품이 많았다. 베이징역 앞 마트에서 그렇게 샅샅이 둘러봐도 찾을 수 없던 신라면과 김치라면도 있고, 어릴적 동생이 먹는 것을 야금야금 뺏어먹던 고래밥과 쵸코송이 과자도 보였다. 라싸 아리랑 식당에서 딱한번 한식을 먹었을 뿐, 여행하는 동안 한국 음식을 한 번도 찾지 않았는데 그래도 한국사람이라고 유독 한국제품에 눈이 갔다.

베이징에서 먹거리를 준비하면서는 여행에 대한 설레임이 가득했는데, 라싸에서 막상 떠날 준비를 하려니 아쉬움이 많았다. 티베트를 느끼기에 8일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오기전에 티베트에 관한 책이라도 많이 읽어둘 것을. 급하게 허겁지겁 두 권 읽고 온 책 내용은 막상 티베트에 도착하고 나니 기억나는게 없었다. 가물가물 거리는 기억의 실오라기를 잡고 유구한 역사의 명승고적과 성지를 둘러보느라 매일같이 머리가 헐떡였다. 고산도시에서 호흡의 헐떡임만 고민하고 예비대책을 마련했을 뿐, 나는 지식의 헐떡임에는 전혀 무방비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나서 후회하면 무엇하랴. 어차피 한낱 여행자인 내가 짧은 여행을 통해 이들의 삶을 속속들이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래도 언젠가 다시 한 번 저들의 삶의 터전 속에 깊숙히 내 발을 디뎌볼 그 날을 다시 한 번 꿈꾸며, 이번의 짧은 경험이 한낱 추억으로만 간직되지 않길 바래본다. 한 손에는 기차에서 먹을 양식을 들고, 한 손에는 김연씨와 나눠마실 커피나이차 2개가 든 봉지를 들고 저벅저벅 발걸음을 호텔로 옮긴다. 머릿속에는 온통 벌써부터 다시 티베트에 올 궁리가 가득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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