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위에 여행의 정점(頂點)을 찍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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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산맥의 최고봉 – 에베레스트

사방은 적막하리만큼 고요했다. 굽이굽이 능선을 따라 차가 조심스럽게 오르는 길에는 희미한 불빛조차 하나 없었다. 오직 우리가 탄 차량의 헤드라이터가 어둠 속 유일한 등대였다. 이 길 위 짙은 어둠은 오히려 찬란한 빛이 되어준다. 불빛하나 없는 새까만 밤하늘이 상상할 수 없을만큼 황홀했다. 총총히 박힌 무수한 별들. 무더운 여름날 시원스레 내리는 한나절의 소나기처럼 밤하늘의 별들이 이내 곧 쏟아져내릴 것처럼 빛났다. 이상하게 목이 메였다. 주책없이 울컥 눈물도 나려했다. 내 생에 세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아름다운 밤하늘이었다.

자정을 20분 앞두고서 겨우 우리의 목적지 롬복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새벽 6시30분에 시작한 여행길이 밤 11시 40분에야 끝이났다. 티베트 아주머니 2명이 후레쉬를 들고 나와서 방의 불을 밝혀줬다. 침대 하나당 80원, 2인 요금이 160원이고 기사는 공짜란다. 3명이 한 방을 쓰기로 했다. 낯선 남자와 한 방에서 잔다는 것이 다른 때라면 절대 내키지 않았을텐데, 오히려 운전기사가 김연씨와 나의 보호자처럼 든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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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복 게스트하우스

부러운 배신자.
이런 여행의 경험이 많은 운전기사가 차 안에서 침낭을 가져왔다. 본인의 침대 위에 달랑 하나인 침낭을 깔고 그 위에 이불을 두겹 덮어둔다. 그리고 세수대야에 물을 받아서 얼굴도 아니고 오로지 발만 닦기 시작했다. 김연씨와 나는 부러워서 침낭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우리는 이 한겨울에 이곳에 오면서 먹을 것만 준비할 줄 알았지, 추위에 대한 방비는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다. 라싸에서 입었던 옷차림 그대로였다.

얼굴은 물티슈 한 장으로, 더운 물 한 컵을 받아서 달랑 이만 닦고 자리에 누웠다. 이불은 언제 빨았는지, 큼큼한 야크버터냄새가 쩔었다. 물이 귀한 곳이니 지난 여름 성수기를 보내고도 한 번 안 빨았던 것 같았다. 그래도 이불을 콧구멍 바로 위까지 치켜 덮었다. 안 그러면 다음날 아침 나는 땅땅하게 얼어붙은 동태가 되어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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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복 게스트하우스에서 8km 떨어진 베이스캠프 가는 길

새근새근 잘도 잤다.
오로지 기사만. 아침 7시30분에 일어나기로 핸드폰 알람을 맞춰놓고 잤는데, 도무지 더이상 누워있을 수조차 없었다. 다행히 고산증을 느끼지 않았지만 너무 추워서 잠이 들었다깼다만 반복하다 아침을 맞았다. 김연씨와 나는 7시부터 일어나서 부산을 떨었다. 장엄하게 에베레스트산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상상하며 기사를 흔들어 깨웠다. 지금 가도 해가 뜨려면 한참 기다려야 하니 더 누워있으라는 기사 말이 들리지 않았다. 이곳에서 경험한 추위는 이제껏 내가 경험해본 추위가 아니었다. 상상 그 이상의 추위였다. 몸을 움직여야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에서 하룻밤이 김연씨와 나를 더 돈독하게 해줬다. 화장실도 꼭 손을 붙잡고 함께 갔다. 불이 없는 재래식화장실에서 우리는 핸드폰에 달린 후레쉬를 전등삼아 원초적인 거사도 함께 해결했다. 재래식 화장실이지만 더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어떤 세균도 살아 남을 수 없는 맹추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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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서다

낭패다.
롬복 게스트하우스를 조금 벗어나면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 운행하는 환경버스가 있다. 모든 여행객은 여기서 내려 환경버스로 갈아타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버스는 커녕, 개미새끼 한 마리조차 얼씬거린 흔적이 없다. 룸복 게스트하우스부터 우리를 따라왔던 짚차 한대도 우리 뒤에 섰다. 우리 기사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셀 수 없이 많이 와봤지만, 이렇게 겨울에 온 건 처음이란다. 그리고 환경버스가 보이지 않는 것도 역시 처음이란다.

잠시 갈등하던 기사는 다시 차를 몰기 시작했다. 원칙은 베이스캠프까지 차를 몰고 가서는 안되지만, 상황이 이런만큼 베이스캠프에 있는 군초소에 가서 본인이 알아서 얘기해 보겠단다. 하지만 도착한 군초소에는 불만 켜있을 뿐 군인은 없었다. 뒤따라 올라오던 차량은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환경버스가 나타날 때까지 밑에서 기다리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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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5,200m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기념비

처음 본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는 예상외로 초라해 보였다. 해발 8,848m의 히말라야 산맥의 최고봉이 바로 눈 앞에 있는데 말이다. 중국어로는 주무랑마, 티베트어로는 ‘대지의 여신’이라는 뜻의 초모랑마. 대지의 여신도 아직 꿈나라인가? 어스름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녘 초모랑마는 사진 속 새하얀 설산과 달랐다. 대지의 여신이 내뿜는 광채를 느끼기에 아직은 이른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의 절정이 될거라 생각했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가 최고 정점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에 내심 감사했다. 기쁨에 차오르는 눈물과 슬픔에 흘리는 눈물의 감정은 흡사하다. 나는 이곳에 오면 벅찬 감동에 눈물이 날까봐 겁이 났다. 그 눈물이 오히려 깊은 한숨처럼 슬픔의 눈물로 변해버릴까 더럭 겁이 났던 것이다. 에베레스트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2008년의 좋지 않았던 기억들을 말끔히 씻어버리고자 했던 계획이 물거품이 되버린 것에 오히려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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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만난 중국산타

갈등하던 뒷차량도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중국인 아저씨.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저절로 웃음이 났다. 날씨가 추워서 가지고 온 옷이란 옷은 모조리 꺼내 입으셨단다. 나는 그에게 중국어로 ‘산타할어버지가 베이스캠프에 나타나셨다!’ 소리쳤다. 이 날은 12월 25일 크리스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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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아저씨도 유쾌하게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며 나를 환영했다. 기념비 앞에서 사진은 찍었냐며 아직 찍지 않았다는 내게 얼른 자세를 잡고 서보란다. 아저씨와 나는 서로를 모델로 번갈아가며 사진을 찍었다. 아저씨 덕분에 조금전 무거웠던 마음이 이내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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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여신 ‘초모랑마’

사진 속 여름날처럼 눈부신 에베레스트의 모습은 아니지만, 겨울날 에베레스트 역시 충분히 멋졌다. 여름날 에베레스트는 절정 중 절정의 풍경을 뽐낸단다. 하지만 여름철은 우기라서 에베레스트가 구름에 가려져 좀처럼 그 위용을 드러내지 않는단다. 그래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여행하기 가장 좋은 때는 늦은봄과 가을철이라고 한다. 그리고 겨울철에는 우리처럼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이따금씩 찾아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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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타고 온 짚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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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삼총사

추워서 좀처럼 차에서 내리지 못하는 김연씨. 운전기사 아저씨는 사진을 찍으려고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는 나에게 사진찍기 좋은 장소를 알려주기 위해서 자주 차에서 내렸다.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광둥어 다음으로 알아듣기 어려운 사천사투리. 아저씨는 사천사람이다. 아저씨는 나를 위해서 아주 천천히 말을 했다. 마치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어린딸을 가르치는 것처럼 친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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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밝으면서 에베레스트의 풍경도 차츰 변한다

해가 산 위로 떠오르는 풍경은 보지 않기로 했다. 절정에서 만끽할 희열은 다음 기회로 미뤄두기로 했다. 설령 책에서 본 절정의 에베레스트 풍경을 일생에 한 번 볼 수 없다한들, 아쉬움은 없었다. 지금 이대로도 충분했다. 충분히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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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돌아가는 길

어젯밤 우리가 달렸던 길이 이랬구나. 빙글빙글 언덕을 돌고 돌아서 올라가는 길. 포장된 도로는 아니었지만 상태가 좋았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위해서 도로를 정비했단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입장료가 180원, 별도로 짚차에 부과되는 입장료 400원. 티베트에서 낸 입장료 중에 최고였다. 도로정비 및 환경보호를 위한 목적도 있겠지만 실로 엄청난 금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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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본 에베레스트 풍경

운전기사 동생이 가다가 마음에 드는 풍경이 있으면 언제든 차를 세우란다. 어림잡아 나보다 2~3살은 더 많을 줄 알았는데 나보다 2살이 어리단다. 산남지역부터 여기 에베레스트까지 2박 3일을 함께 했더니 무척 친근하게 느껴졌다. 지난밤 김연씨와 나 여자 둘이었다면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공포까지 더해졌을 것이다. 어쩌면 마음이 든든해서 나보다 더 나이가 많을 거라 짐직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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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돌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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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에 다시 한 장

돌아오는 길, 그저 모든 것에 감사했다. 내 옆에 있는 김연씨에게도, 든든한 운전기사에게도. 추운 날씨였음에도 거센 바람까지 선물하지는 않았던 자연에게도. 라싸까지 돌아가려면 아직 700km가 넘게 남았지만 힘겨운 산봉우리 길도 잘 넘어준 우리 차에게도. 어디하나 고맙지 않은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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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가장 고마운 것은 ‘나’에게 였다. 한국에서 감기를 달고 라싸에 왔어도 건강하게 잘 뛰어준 심장에게. 이것저것 가리는 음식 없이 아무거나 잘 먹는 내 먹성에도. 걸어도 걸어도 잘 지치지 않던 내 다리에게도. 그리고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드릴 준비를 하고 활짝 문을 열어준 내 마음에게도.

마지막으로 고마운 마음으로 이번 여행의 정점을 찍게 해준 하늘 위 이름 모를 당신에게도 무한한 감사를 표하고 싶다. 이 날에 느낀 감동과 감사하는 마음, 오랫동안 잊지 않겠노라고. 앞으로 힘든 일이 있을 때, 이날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힘을 내겠노라고. 그리고 모든 것에 감사했던 그 마음 변치 않고, 겸손하게 살겠노라고. 진심을 다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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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

뭔가 먹을 때 잔소리만 하지 않으면 절대로 화내지 않는 팡팡한 풍채의 중국 오지 여행 전문가. 저서로는 《70일간의 실크로드》가 있고, 2010년에는 EBS 〈세계테마기행〉의 ‘신비의 땅, 중국 광시’편에도 출연한 바 있다.현재 중국과 관련한 방송코디로도 활동중이다 @pang_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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