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들어갈 수 없어요.”
버젓이 사원 안으로 오가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무슨 소리인가?
“지금은 오후 휴식시간이예요. 3시 30분 되면 다시 오세요.”
어리둥절해 하는 내게 정문 앞에 앉아 책을 보던 승려가 들어갈 수 없는 이유를 짧게 설명해줬다. 옆에 선 김연씨가 오후 휴식시간이라 지금 들어가도 사원 안을 볼 수가 없다는 보충설명을 했다. 우리는 갈 길이 바빴다. 이제 오후 2시 30분이 조금 넘었을 뿐인데. 아무래도 저녁 10시 30분까지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 아래 룸복사원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려고 했던 계획에 조금 차질이 생길 것 같았다. 김연씨와 나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서로 바라봤다.
터벅터벅 걸어서 우리가 타고온 차에 돌아왔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기다리는 수 밖에. 에베레스트가는 길이 얼마나 먼 지, 도로상황이 어떤지 모르는 나는 천하태평이었다. 그렇게 30분이 지났다. 기다리다가 안되겠는지, 김연씨가 다시 한 번 가보자고 했다.
“안에 들어가서 기다리면 안돼요? 밖에서 천천히 구경하다가 사원 문 열리면 들어갈게요.”
김연씨가 승려에게 물었다.
“안 돼요. 지금은 표 파는 사람도 점심먹으러 갔어요.”
“저희가 좀 급해서 그러는데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그렇게 급하면 나한테 표 값을 내고 가요. 표는 있다가 다시 출구로 나올 때 줄게요.”
김연씨가 망설이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안 돼요. 저 사람을 어떻게 믿어요. 30분 더 기다렸다가 직접 표 사서 들어가요.”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러면 룸복사원에 밤 12시 넘어서 도착할 수도 있어요. 밤이라 기사분 운전하기도 힘들고요. 타쉬룬포가 넓으니까 지금 들어가면 아마 문 열때쯤 사원 앞에 도착할 거예요.”
티베트의 사정은 김연씨가 밝으니까 나는 그녀를 믿고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승려에게 먼저 돈을 내고 표는 나중에 받기로 했다. 1인당 60원, 2명이니까 120원. 잔돈이 없던 우리는 빳빳한 100원짜리 두 장을 승려에게 내밀었다.
“거스름돈도 있다가 표랑 함께 받아요. 매표소 직원 오면 말해놓을게요. 저도 지금 잔돈이 없어요.”
이럴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정말 저사람은 승려가 맞을까? 만약 저사람이 200원을 들고 사라져버리면, 우리는 생돈 200원 날리고 다시 120원내고 표를 사야하는 게 아닌가? 나는 승려를 믿고 입구로 들어가려는 김연씨 옷자락을 붙잡고, 승려에게 말했다.
“있다가 나오면서 우리가 직접 표를 사면 안돼요?”
“지금 나를 못 믿는 거예요? 그럼, 지금 들어가지말고 있다가 매표소 직원오면 표 사서 그때 들어가세요.”
속으로 뜨끔했다.
“지금 당신도 우릴 못 믿고 있잖아요. 우리도 어떻게 처음 보는 사람을 믿겠어요?”
짐짓 태연한 척 물었다.
“제 옷을 보세요. 승려는 절대 사람을 속이지 않아요.”
더이상 할 말이 없었다. 먼저 들어가겠다고 부탁한 건 우리였다. 200원이면 4만원.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한 시간 후에도 과연 저 사람이 정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의심을 떨치지 못한 채 타쉬룬포에 들어섰다. 이번에는 김연씨가 천하태평이다. 김연씨는 정말 그 사람을 믿나보다. 하지만 나는 승려에 대한 석연치 않은 마음을 쉽게 거둘 수 없었다.
그래도 타쉬룬포는 흥미로웠다. 티베트에서 본 사원 중 가장 사원다웠다. 라싸의 드레풍사원만큼 큰 규모, 그러나 드레풍사원에서 좀처럼 만날 수 없던 스님을 타쉬룬포에서 자주 마주치곤 했다.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니는 어린 동자스님부터 늠름한 청년스님과 이제 깨달음의 경지에 올라 세상을 달관한 듯한 표정의 노스님까지. 전성기때에는 무려 4,800여 명이 넘었던 사원에는 현재 800여 명의 승려가 머물고 있단다. 타쉬룬포는 현재 티베트의 사원 중 가장 많은 스님이 살고 계신다.
시가체와 라싸는 비슷한 점이 많다. 지금은 라싸가 티베트 제1의 도시이지만, 16세기에는 시가체가 티베트 제1의 도시였다. 그리고 라싸가 달라이 라마를 중심으로 한 도시라면, 시가체는 판첸라마 중심의 도시이다. 그래서 시가체는 종종 라싸의 비교대상이 된다. 그 중심에는 늘 타쉬룬포가 있다.
타쉬룬포는 현재 티베트 불교의 최대 종파인 겔룩파에 의해 창건됐다. 1447년 쫑카파의 제자인 제 1대 달라이 라마가 세웠다고 한다. 티베트에서는 달라이 라마가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판첸라마는 아마타불의 화신으로 믿고 있다. 달라이 라마와 판첸 라마는 서로 먼저 태어난 사람이 스승이 되어 가르침을 전하는 전통이 있는데, 현재 14대 달라이라마가 인도로 망명을 한 후 중국이 내세운 판첸라마가 티베트의 실질적 지도자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허수아비일 테지만. 타쉬룬포는 그 판첸라마가 머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타쉬룬포는 오늘날 라싸의 드레풍사원, 세라사원, 간덴사원, 청해성의 타얼스와 감숙성의 라부렁스과 더불어 겔룩파 6대 사원에 꼽힌다. 그 중에서는 유일하게 문화혁명 당시 대대적인 티베트 사원 파괴에서 살아 남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티베트 여행의 필수 코스이기도 하다.
드디어 대전 앞이다. 많은 사람들이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작은 개 한 마리를 힘겹게 끌고 올라가시던 스님도 보였다. 어디서 나타났는 지 옆에는 젊은 청년이 노스님을 부축하고 있다. 참 다행이었다. 계단을 오르던 스님의 뒷 모습이 위태롭게 느껴졌는데. 그 모습이 안타까워 도와드리고 싶었지만 나는 선뜻 다가서지를 못했다. 마음도 몸도 머뭇거리기만 했다.
문이 열리자 사람들은 너도 나도 먼저 들어가려고 아우성이었다. 어디를 가는지 알기에는 아직 어린 아이도 엄마손을 잡고 열심히 계단을 오른다. ‘이럴때는 종교라는 게 뭘까?’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부딪치곤 한다. 종교는 왜 자연환경이 척박한 곳에서 더 강한 믿음을 만들어 낼까? 무슬림이라면 일생에 꼭 한 번은 메카 순례를 꿈꾸고, 기독교인이라면 한 번쯤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 앞에 서보기를 꿈꾸고, 티베트인들은 오체투지로 자신의 인내심 테스트까지 하면서 왜 라싸에 오고 싶어할까?
대전 안은 화려했다. 그리고 조금 음침했다. 대전마다 1세부터 10세 판첸라마의 영탑을 모셔놓았다. 사람들은 그 영탑을 보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역대 판첸라마의 영탑, 죽은 자의 시신을 모셔놓은 탑은 황금빛으로 화려했다. 티베트인들은 진지하게 영탑을 향해 두손을 합장했다. 그리고 가지고 온 1마오를 영탑을 향해 살짝 던져넣거나, 수유버터가루를 타오르는 초 밑에 거름처럼 뿌리기도 했다.
몰려드는 신자들로 젊은 승려는 귀찮은가 보다. 알아들을 수 없는 티베트어로 이야기하며 손짓으로 빨리 지나가라고 제촉했다. 그래도 티베트인들은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승려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데 영탑 아래로 수북히 쌓인 1마오가 스산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타박을 받으면서도 영탑을 보며 감격해하는 티베트인들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늘 경건하게 보이던 그들의 모습이 처음으로 애처롭게 느껴졌다. 이제 나도 집에 돌아갈 때가 되었나 보다.
동전으로 불심을 표현하는 건 누가 생각했을까? 티베트에 와서 동전을 처음 보았다. 늘 1마오짜리 지폐만 수북하던 사원에서 동전을 보는 것도 신기한데, 하나 하나 정성스럽게 붙여 만든 불교의 상징을 보니 웃음이 났다. ‘저 마음을 부처님을 알아주시려나?’ 부디 혼자만의 짝사랑이 아니길.
한 시간 반에 걸친 사원 순례도 끝이 났다. 여유가 있다면 사원을 따라 코라도 한바퀴 돌고싶고, 전망이 좋은 곳에서 시가체도 한 번 내려다보고 싶은데 시간이 촉박했다. 방학이 3일 남은 초등학생이 밀린 일기를 쓰듯 타쉬룬포를 보고 빠른 걸음으로 출구로 향했다. 잠시 잊고 있던 승려와 피같은 200원이 떠올랐다. 발걸음은 점점 더 빨라졌다.
그럼, 그렇지.
그 승려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어쩐지 영어로 된 가이드북을 읽고 있는게 미심쩍더라니. 진짜 승려가 아니라 승려복으로 안심시키고 외국인에게 가이드해서 돈이나 벌려는 한심한 중생인 게지. 티베트에는 가짜 승려가 많다더니 사실인가보다.
이때,
매표소에서 진짜 승려가 우리를 불렸다.
“표 좀 보여주세요.”
“혹시 문 앞에 앉아서 책 읽던 젊은 승려 못 보셨어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김연씨가 물었다.
“아, 아까 그 승려가 말하던 분들이군요!”
매표소의 진짜 승려가 얼른 표 2장과 80원을 건네줬다.
“그 분이 가면서 정문 꼭 지켜보고 있다가 두 젊은 여자분 오시면 드리랬어요.”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뭐라고 설명을 하고 갔는지, 매표소의 진짜 승려는 별 다른 말도 묻지 않고 바로 돈을 건네줬다. 꼬치꼬치 묻기라도 했으면 덜 부끄러웠을텐데. 아까 그 승려가 “제 옷을 보세요. 승려는 절대 사람을 속이지 않습니다.”하며 나를 바라보던 눈빛. 그리고 결연한 표정이 떠올랐다.
‘속아도 어쩔 수 없지’ 체념하는 마음으로 들어갔다. 마치 배포가 큰 여장부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마음 한 켠에는 만약 우리를 속였다면 한 바탕 욕을 하려고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매표소의 진짜 승려의 친절함까지 더해져 내 속내를 들켜버린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책 읽던 승려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잠시라도 당신을 의심했던 걸 사과한다고 전하고 싶었다.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대하지 못한 어리석은 중생을 부디 용서하라고.






















Pingback: [티베트여행] 2010년 가을∙겨울 티베트 자유여행 7일/8일 | 레드팡닷컴
Pingback: 2011년 신년맞이를 티베트에서(12월 28일 출발) | 레드팡닷컴
Pingback: [칭짱열차로 영혼의 도시에 맞닿다] 티베트 자유여행 8일 | 레드팡닷컴
Pingback: [뭉치면 싸다] 티베트자유여행8일 | 레드팡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