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불교성지순례지’이다. 어쩌면 우리 대한민국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 중에는 부처의 나라, 티베트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는 이가 더 많을 지도 모른다. 꼭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이곳은 정치적 민감성과 인권문제 등으로 국제뉴스에 자주 오르락 내리락 해서 중국의 애간장을 테우는 곳이니 말이다. 마치 인도의 수도가 뉴델리라는 건 몰라도 ‘간디’가 인도사람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나처럼 쿠바의 수도가 어디인지 몰라도 ‘체 게바라’가 쿠바사람이라는 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불교도가 아닌 여행객이 불교의 성지에서 ‘사원순례’는 참 고역이다. 사원에 대한 어떤 거부감때문이 아니다. 그렇다면 아예 처음부터 티베트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순례’가 아니라 단순 ‘탐방’이긴 하지만, 내 미천한 역사적 지식과 불교에 대한 이해가 바로 문제의 핵심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동행을 했다. 가이드와 함께. 여기까지 와서 ‘까만 건 글씨요, 하얀 건 종이구나’ 하고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사실, 어차피 한 번 들어서는 잘 모르는 건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결론은 역시 도움이 되더라이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는 Mr.뚱 덕분에 티베트의 현지 여행사에서 많은 도움을 줬다. 티베트의 발원지인 산남지역에 갈 때에 차량과 가이드 등, 에베레스트와 시가체, 간체에 갈 때에도 역시 차량이 제공되었고 가이드는 아니지만 정말 친동생처럼 친해진 현지 여행사의 여직원이 동행을 했다. 덕분에 마치 어릴 적 소풍가는 날처럼 즐거웠다. 역시 인간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행복을 느끼나 보다.
세라사원은 라싸시내의 외곽에 위치했다. 세라사원으로 들어가는 넓다란 골목길이 마음에 든다. 라싸에서 첫날은 포탈라 코라를 따라 도는 순례자들과 티베트의 심장인 조캉사원, 그리고 조캉사원 앞 오체투지자들에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여기 세라사원으로 가는 길은 시골마을의 어귀처럼 푸근해서 좋다. 티베트의 명물인 감자를 큼직큼직하게 잘라 튀겨서 고추가루를 팍팍 뿌려주는 아줌마의 재빠른 손놀림에 아침을 배부르게 먹었는데도 군침이 돌았다.
세라사원으로 가는 길에는 이미 사원을 돌아보고 내려오는 사람도, 이제 사원으로 가려는 사람도 많았다. 어디 사람구경만큼 재미난 게 또 있을까? 그래서 첫날에는 못했던 가까이에서 인물사진 찍기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찍다보니 조금씩 용기가 생긴다. 티베트의 어르신 중에는 ‘사진을 찍는 건 영혼을 빼앗기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마니륜을 돌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내 사진찍기가 그렇게 걸리적 거리지는 않나보다. 본인의 업무(?)에만 충실하려는 듯, 옆에서 어슬렁대는 나를 한 번 돌아도 안 보시고 충실히 마니륜만 돌리셨다.
라싸에 오면 시내거리에서 자주 스님을 마주칠 줄 알았다. 하지만 생각처럼 기회가 많지는 않았다. 오히려 옛 동티베트의 한 부분이었던 사천성의 캉딩에서나, 중국의 리틀티베트라 소문난 감숙성 감남티베트자치주 샤허의 라브랑스에서보다 적었다. 그런데 여기 세라사원에 오니 사원을 바쁘게 오가는 스님들이 정말 많았다. 세라사원은 규모가 너무 커서 사원같지 않게 느껴졌는데, 스님을 보니 이제야 정말 사원에 온 기분이 들었다.
세라사원은 간덴사원과 드레풍사원과 더불어 라싸시 외곽에 위치한 3대 사원이자, 현재 티베트 불교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겔룩파의 6대 사원 중 하나이다. 함께 온 가이드 말이 간덴사원은 지난 3.14 티베트 독립시위로 인해서 현재는 관광객에 개방을 하지 않고 있단다.
600년의 역사를 가진 세라사원은 사실 티베트 최대의 불교대학이었다. 역대 달라이 라마들도 이곳에서 수학하고 ‘거쉐’라는 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학생이 최고로 많았을 때는 7,000여 명에 달했던 이곳의 현재 학생수는 300여 명. 문화혁명기를 거치면서 사원이 파괴되고 승려가 박해를 받은 데다, 1959년 중국에 대항하던 제 14대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망명할 때 가장 많은 승려들이 인도로 따라나선 곳도 바로 세라사원이었다.
그렇다면,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에서 어떤 존재인가?
티베트인들이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 믿고 있는 달라이 라마는 본래 티베트 불교의 수장이자 최고 통치자인 법왕의 호칭이다. 달라이 라마는 죽기 전에 차차기(次次期)의 달라이 라마가 어느 곳에 태어날 지를 유언으로 남긴다. 달라이 라마가 죽은 후 예언된 지역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시험과 계시를 통해 환생자를 가려낸다.
쉽게 예를 들면, 12대 달라이 라마가 지목한 후계자가 현재 인도에 망명정부를 차린 14대 달라이 라마이다. 현재 복잡한 정치문제가 얽혀있지만, 14대 달라이 라마를 이을 후계자는 지난 13대 달라이 라마 유언에 따라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다. 이 후계자를 판첸라마라고 한다.
세라사원에서 가장 큰 볼거리는 매일 오후 15시~15시 30분 경에 열리는 최라(Chora)로 불리는 승려들의 교리문답 토론이다. 세라사원 앞마당 정원에 승려들이 모여 앉아 보통 1:1로 토론을 한다고 한다. 먼저 한 승려가 질문을 하면 상대가 바로 대답을 하는 것으로 토론이 이루어 진다. 질문에 대한 답을 즉시 하지 못하면 탈락. 때문에 마치 서로 싸우는 사람처럼 얼굴까지 빨개지고, 제스쳐는 삿대질하고 싸우는 것처럼 보인단다.
우리는 오전에 이곳에 왔으니, 그 명장면을 볼 수 없었다. 오후에는 드레풍사원을 둘러보기로 했다. 세라사원과는 달리 산 위에 세워진 드레풍사원은 라싸시내보다 해발고도가 더 높은 곳이다. 보통 여러 명의 여행객들이 함께 온 단체의 경우, 드레풍사원을 끝까지 돌아보고 내려가는 경우가 드물단다. 꼭 손님 중 한 명 또는 여러 명이 고산반응을 조금 심하게 느끼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내가 판단을 잘못했다.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을 줄이야. 숨이 차는 느낌도, 갑자기 심장이 벌렁거리는 경우도,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픈 느낌도 전혀 없었다. 미리부터 겁을 먹고 세라사원에 먼저 왔건만, 이렇게 멀쩡할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드레풍사원부터 갔다가 세라사원에 와서 최라를 보는 건데 말이다. 그래도 이렇게 멀쩡한 내몸에게는 무지무지 고마웠다.
함께 와서 설명해준 가이드 박용걸씨에게 무지 미안하다. 이것저것 세심하게 참 많이도 설명해줬는데, 지금에 와서는 하나도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아무래도 혼자서 까마귀고기를 먹은 것 같다. 저 위에 수유버터에 관한 이야기며 벽화에 그려진 4개 불상에 관한 이야기도 재미나게 들었는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들을 때는 꼭 기억해두고 싶어서 이렇게 사진까지 찍어놨는데 말이다.
이게 다 사원이 무지막지하게 크기때문이다. 여기는 무슨 대학이고, 여기는 무슨 사원이고. 정말 열심히 설명을 들었는데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 사진은 확실히 세라사원이 맞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만도 고마워해야 할 판이다.
그래도 몇가지 확실히 기억하는 게 있다. 세라사원 뒷편의 산에 위치한 조장터이다. 라싸시내에 남은 조장터로는 유일한 곳이라고 했다.
세상에 죽음만큼 평등한 것이 또 있을까? 세상에 태어난 이상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게 바로 죽음이다. 티베트의 장례풍습에 관한 이야기들. 그중에서도 죽은이의 육신을 조각조각 토막내어 독수리에게 바치는 풍습을 처음 들었을 때는 끔찍했다. 마치 내 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기분이랄까? 정말 섬뜩했다.
어쩌면,
내가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건 죽은 내 몸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건 ‘죽음’이라는 본질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생에서 내게 가장 소중했을 내몸을 아낌없이 자연에게 ‘보시’를 하고 떠나는 티베트의 조장풍습이 더이상 야만적이거나 공포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조장을 통한 해부학. 이 조장문화를 통해서 티베트의 의학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하나도 남김없이 독수리의 먹잇감이 되어 자연의 훼손까지 막을 수 있었으니, 조장은 이곳 자연환경에 딱 맞는 풍습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중국의 1마오 화폐의 절반은 라싸에 있을 거라던 말. 재밌어서 기억이 난다. 아마 티베트에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감할 것이다. 사원 안 불상 앞에 1마오 지폐가 수북하게 쌓인 풍경. 그리고 거리 곳곳에서 오체투지자들에게 티베트인들이 아낌없이 눠주는 1마오를. 아예 1마오를 한 뭉치 가지고 다니며 거지에게도 한 장씩 나눠주고, 사원에도 내는 모습을 자주 보았을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보시’문화다. 티베트인은 생활 속에서 보시를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일상으로 실천하고 있다.
혼자하는 여행도 좋지만, 말동무가 옆에 있으니 시간가는 줄도 몰랐다. 산책을 하듯 사원의 구석구석을 한 바퀴 돌고 내려오는 길에 마니차를 손에 아줌마 2명과 할머니 빛바랜 사원의 하얀 벽돌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장면을 포착했다. 사진 찍으려고 손을 바쁘게 움직였으나 실패. 사진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걸 무척 아쉬워 하고 있는데, 앞에서 노란색 잠바를 입은 꼬마 한 명이 우리에게 달려왔다.
“아줌마, 지금 내 사진 찍었으니까 어서 1원 줘요!”
“꼬마야, 아줌마는 너를 찍은 게 아니야.”
“내가 다 봤어요. 아줌마가 날 찍는 거.”
“아닌데…”
사진기를 보니 꼬마네 일행이 정말로 찍혔다. 그래도 꼬마가 어떻게 나올 지 궁금했던 나는 시치미를 뚝 뗐다.
“정말 안 찍었다니까.”
“아줌마, 그러지 말고 그냥 1원만 줘요. 1원만”
이번에는 제발 1원만 달라고 통사정을 한다. 죽은 몸까지 보시를 하는 곳이 티베트이지만, 자비의 마음을 가지고 아무런 조건 없이 베푸는게 진정한 보시가 아닌가? 꼬마에게는 내가 야멸치게 보였겠지만 나는 끝내 1마오도 주지 않았다. 자꾸 매달리는 꼬마가 그냥 귀찮기만 했다면 1원을 주고 말았겠지만, 지금은 어려서 동냥하며 살 수 있다지만 커서는 뭐가 되려고? 하는 생각과 우선 옆에서 자꾸 꼬마를 부추기는 할머니인지 어머니인지의 행동이 더 싫었다.
그러고보니 가끔은 자비를 베푼다는 보시문화도 문제가 있다. 전 중국에 퍼져사는 티베트인들. 중국을 여행하면서 만난 수많은 거지들. 그중에서 중국이 장족이라 부르는 티베트인들이 제일 많았다. 물론 한족과 얼굴이 확실하게 구분되는 이유때문에 그렇게 느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는데 익숙한 보시문화는 받는데도 너무 익숙하게 만들어버렸다. 마치 빌려간 돈을 이제서야 받는다는 듯 돈을 휙하니 낚아챈다. 그리고 고맙다는 말도 없이 총총히 사라져 버린다. 가끔은 좋은 뜻의 보시문화가 아주 몹쓸 문화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나는 1원 안주고 핑계가 너무 길다는 생각. 정말이지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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