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에게로 가는 길, 라싸에서 가장 티베트다운 곳: 바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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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에는 개가 참 많다. 라싸에는 주인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새침하게 생긴 애완견이 제일 많고, 시가체와 간체에서는 전문적인 직업(?)을 가진 양치기개가 많다. 라싸에서 내가 묵었던 항공호텔 옆 가게에는 ’1박 2일의 상근이’를 닮은 녀석이 있다. 털도 하얀색이고 몸집도 딱 상근이만하다. 녀석의 성격은 또 어찌나 유순한 지, 착한 표정으로 껌뻑이는 까만 눈이 아주 매력적이다. 그래서인지 동네사람들도 이 녀석을 무척이나 귀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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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싸에서 자주 만난 녀석은 ’1박 2일의 상근이’를 닮았다

나도 개를 무척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 남들은 꿈 속에서 개가 나오면 안 좋다고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개와 함께 신나게 뛰어 노는 꿈을 꾸는 날에는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처럼 기분이 좋다. 우리 친정집 식구들 역시, 나처럼 개를 좋아한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시집을 오기 전까지 오랫동안 개를 키웠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찍은 대문짝만한 우리집 가족사진에는 한자리를 턱하니 차지한 견공이 있을 정도다.

티베트인들도 우리 가족만큼이나 개를 사랑한다. 어쩌면 우리 가족보다 더 끔찍하게 사랑하는 것 같다. 윤회를 믿는 티베트인들은 짐승도 윤회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개도 사람처럼 이생에 코라를 열심히 돌고 사원에 자주 가면, 다음생에서는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라싸에는 아침부터 주인을 따라 코라를 도는 개들이 많다. 물론 개들에게는 그냥 즐거운 산책길일테지만, 오늘도 주인은 변함없이 개와 함께 코라를 돈다. 다음생에는 이생에서보다 더 좋은 세상에서 태어나기를. 그리고 지난 생에 쌓은 업보를 다 씻어버릴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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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도 나의 가족, 개와 함께 코라 한 바퀴

티베트인들이 하루를 열고, 하루를 마감하면서 도는 순례길 코라. 라싸에는 중요한 코라가 4개있다. 먼저 가장 짧은 코라로 조캉사원의 내부를 한 바퀴 도는 ‘낭코르(Nangkor)’가 있고, 조캉사원의 외부를 따라 한 바퀴를 도는 ‘바코르(Bakor)’, 포탈라궁을 따라 한 바퀴를 도는 ‘포탈라 코라(Potala kora)’, 옛 라싸의 구시가를 따라 도는 8km 코스의 ‘링코르(Lingkor)’가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코라는 조캉사원 외부를 따라 한 바퀴를 도는 바코르이다. 아무리 먼 거리에서부터 오체투지로 최종목적지인 조캉사원 앞에 도착했다고 해도 진정한 순례자라면 조캉사원으로 바로 직행하는 경우가 없다. 순례자라면 먼저 이 바코르를 따라 도는 것으로 부처를 알현한다. 길을 따라 돌면서 먼저 호흡을 가다듬고 경배의 대상, 부처를 만날 준비를 한다.그래서 티베트인들은 바코르를 가리켜 신에게로 가는 길이라 여긴다.

역시.
누가 불량주부 아니랄까봐. 내 불량한 성격은 여기서도 나타났다. 바코르를 한 바퀴 먼저 돌고 조캉사원으로 간 게 아니라, 조캉사원으로 바로 직행했다. 아무런 준비로 없이 부처에게로 직진한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뜻했던 바는 아니다. 원래 계획은 순례자들처럼 바코르를 먼저 돌고나서 조캉사원에 가려고 했다. 그런데 사원 앞에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에게 정신을 빼앗겨서 자꾸 앞으로 앞으로 가다보니, 어느 순간 매표소 앞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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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캉사원을 따라 걷는 바코르

조캉사원을 나와서 나도 순례자들의 행렬에 동참했다. 어디서 시작하든 조캉사원을 따라 한 바퀴를 돌면 순례가 완성된다. 하지만 보통 티베트인들은 조캉사원 앞, 향을 피우는 햐얀색 커다란 향로에서부터 순례를 시작한다. 나의 바코르 순례도 이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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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인파로 북적이는 코라

본격적으로 바코르에 들어서니 먼저 인파에 입이 쫙 벌어진다. 라모체사원에 가는 길에 보았던 티베트시장만큼이나 사람이 많다. 그리고 바코르를 따라 빼곡히 들어선 노점상들을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신에게 다가서기 전에 마음과 호흡을 가다듬는 곳이라더니, 너무나 상업적 향기가 물씬 풍기는 거리가 낯설었다. 조금은 이상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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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코르 주변의 노점상

마치 관광지를 따라 자연스레 형성된 노천 쇼핑센터같다. 생활 필수품은 아니지만, 온통 라싸에 온 기념으로 하나쯤 구입하기 좋은 기념품들이다. 부처의 사진도 있고, 판첸라마와 역대 달라이 라마의 사진도 보인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산타할아버지 인형이었다. 크리스마스를 코 앞에 둔 시점이라 산타할아버지 인형이 특별한 건 아니지만, 부처의 나라 티베트에서 산타할아버지를 만나니 좀더 각별해 보였다. 그리고 인자한 눈매의 산타할아버지가 아니고 눈매가 매서운 산타할아버지 표정이 재미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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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코르 주변의 노점상

티베트인들의 장신구는 정말 화려하다. 자연의 원색을 그대로 닮은 화려한 색채와 정교한 공예가 싸구려 팔찌 하나도 예술품처럼 보이게 하는 힘이 있다. 견물생심이라 했거 늘, 목걸이 하나도 워낙 다양한 무늬가 있다보니 도무지 어떤 걸 골라야 할지 몰라서 살 수가 없다. 눈이 다 어지러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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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코르 주변의 노점상

이곳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마니차였다. 한 번 돌리면 경전을 한 번 읽는 것과 같다는 마니차. 성격이 급한 내게 딱 어울리는 것 같다. 시계방향으로 휙 돌리면 한 번의 힘으로 여러 바퀴가 돌아가기도 하는 마니차. 그럼 나도 티베트에 와서 수차례 경전을 읽은 셈인가. 그렇다면 전부 마니차 덕분이다.

알고보면 마니차에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지금도 티베트는 문맹율이 높은 편이지만, 아주 오래전에는 더 심했더랬다. 특히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로 쓰여진 불경을 읽는다는 건 일반 백성들에게는 거의 불가능이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바로 마니차다. 이 마니차 속에 경전의 교리를 적은 오색종이를 넣어서 글을 못 읽는 백성들도 마니차를 돌림으로써 불교의 교리를 한 번 읽었다는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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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돌릴 때마다 경전을 한 번 읽는 것과 같다는 마니차

바코르에서는 문득문득 신강위구르자치구의 카슈가르가 떠올랐다. 카슈가르는 위구르자치구에서도 위구르족의 정서가 가장 짙게 베어있는 곳이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캬슈가르를 가리켜 ‘용해할 수 없는 지역’이라고 한다. 반대로 중국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위구르인들에게 카슈가르는 ‘마음 속 고향’이다.

그렇다면 바코르가 티베트인들에게 있어서 ‘마음 속 고향’이라고 하겠다. 이곳의 풍경도, 이곳의 문화도, 이곳의 상황도 꼭 카슈가르를 닮았다. 이곳의 노점상은 카슈가르의 일요시장처럼, 화려한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티베트의 집들은 위구르 구시가의 전통가옥처럼, 위구르의 구시가에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떠올렸던 정치적 상황이 티베트의 구시가 역시 너무나 닮았다. 바코르는 라싸에서도 가장 티베트적인 색채와 채취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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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코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티베트의 건축양식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코르를 걷다보니, 어느새 이곳에서 가장 낭만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카페가 보인다. 마지아미. 아직은 낯설은 티베트어보다 익숙한 중국어가 눈에 들어왔다. 티베트의 역사상 아름다운 시를 여러 편 남긴 6세 달라이라마가 흠모했던 여인이 바로 ‘마지아미’이다. 달라이 6세는 이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 밤에 몰래 위장을 하고 포탈라궁을 빠져나오곤 했단다. 이 카페는 이 여인을 만났던 역사의 장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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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코르에서 순례길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 ‘마지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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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아미’에서 바라본 바코르의 풍경

그 유명세때문인지 이 카페의 음료수값은 눈물이 쏙 빠지도록 비싸다. 한국 원화가치가 떨어지다보니 여행자가 체감적으로 느끼는 중국의 물가상승률이 마치 엄청난 것처럼 착각에 빠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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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용품을 사러 나온 스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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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코르 주변의 노점상

바코르는 단순히 순례길로서의 의미만 가진 게 아니다. 사실 바코르는 오랫동안 티베트의 중심이었고, 무역 중심지이기도 했다. 여행객에게 있어서 바코르가 관광기념품을 파는 시장쯤으로 여겨지지만, 오래전 이곳은 차마고도를 통해 들어온 차의 교역이 대규모로 이뤄졌던 곳이기도 하다. 바코르는 이렇게 북적대는 상업공간이자 저 밑바탕에는 두터운 신앙심이 깔려있는 종교적 공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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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코르의 풍경

바코르 순례도 이제 끝나간다. 티베트에서의 첫 하루가 저물어 간다. 첫날 티베트에 대한 느낌은 아찔함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처음 보앗던 포탈라 코라를 시작으로 조캉사원 바코르의 순례자들까지. 온통 생전 처음보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낯설움보다는 머리가 번쩍 깨이는 것처럼 기분좋은 아찔함이었다. 이들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평온함, 마음의 평정심을 잃지 않기위해서 마치 수행을 일상으로 삼은 듯한 모습이 나를 정신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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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체투지 중인 아줌마

신발까지 벗어던진 아줌마가 온몸으로 오체투지를 한다. 세 걸음을 옮긴 후 한 번 절를 올리며 조캉사원을 향하고 있다. 신에게로 한 발짝씩 다가가는 길. 어쩌면 그 길은 신이 아닌 온몸으로 내 영혼과 마주하려는 몸짓 같기도 했다. 고행을 통해서 진실로서 내 영혼을 대면하려는 인간의 작은 노력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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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코르 순례의 끝, 다시 조캉사원 앞에서

바코르 순례을 마치고 다시 조캉사원 앞이다. 이제야 기나긴 점심시간이 끝났나 보다. 내 얼마나 그대들을 기다려왔는가?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필사적으로 오체투지를 하는 티베트인을 바라본다. 온 몸을 바닥에 비비며 ‘옴마니밧메훔’을 중얼거리는 사람들.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언제나 한결 같다.’저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건 무엇일까?’

해탈.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해탈이 아닐까? 전생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이생에서는 수행하는 삶을 살고 다음 세상을 꿈꾸는 삶. 그래서일까? 조금은 남루하고 현실의 삶은 퍽퍽하지만, 수행을 통한 이들의 영혼은 내 영혼보다 자유로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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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먹을 때 잔소리만 하지 않으면 절대로 화내지 않는 팡팡한 풍채의 중국 오지 여행 전문가. 저서로는 《70일간의 실크로드》가 있고, 2010년에는 EBS 〈세계테마기행〉의 ‘신비의 땅, 중국 광시’편에도 출연한 바 있다.현재 중국과 관련한 방송코디로도 활동중이다 @pang_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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