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시간의 대장정. 북경에서 출발한 칭짱열차는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도착 예정시간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종착역 라싸에 멈춰 섰다. 저 역을 빠져 나가면 출구 앞에는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이미 나와 있겠지? MR.뚱이 어떤 남편이던가? 이 엄동설한에, 이 먼곳까지 자신의 보물단지인 딴지여사를 그냥 보낼 사람이 아니다. 라싸역에 도착하면 나를 모시고(?) 갈 사람이 있다. 이렇게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에 북경에서 라싸까지 마음과 뱃 속까지 편안하게 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게 왠일?
역을 빠져 나간 사람들은 벌써 모두 홀연히 어디로 사라져 버렸다. 역 안에서 사진 몇 장 찍고 나왔을 뿐인데. 출구 앞에는 나 혼자 덩그러니 서 있는게 아닌가. 핸드폰으로 역 앞에 마중을 나오기로 한 사람에게 3번이나 전화를 했는데 도대체 받지를 않았다. 기차역 광장 스피커에서는 우리나라 유행가가 흘러나왔다. 여느 중국의 도시와 다름없는 풍경. 그냥 호텔까지 나 혼자서도 충분히 찾아갈 수 있는데. 공연히
처음 온 곳에서 처음 보는 사람을 찾게 만든 MR. 뚱이 조금 원망스러웠다.
고개를 두리번 두리번, 핸드폰을 걸었다 끊었다 하는 내가 이방인이라는 걸 알아 본 중국군인이 말을 걸어왔다.
“누가 마중나오기로 했어요?
“네, 아직 사람이 안 나왔어요.”
“여기는 마중나온 사람들이 역 앞까지 들어올 수 없어요. 앞으로 쭉 걸어가봐요. 택시 잡는 곳에 가면 마중나온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뭐 이런…
택시타는 곳 앞으로 걸어가니, 나를 마중나온 사람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내 이름 석자를 예쁘게 프린트해서 들고 서 있었다. 라싸에서 첫날은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샤워를 하지말라고 했지만, 이틀동안 제대로 씻지 못했는데 어떻게 샤워를 안 할 수 있을까? 구석구석 샤워를 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잠이 안 왔을 것이다. 떡진 머리를 감고 나니 정말 날아갈 것처럼 시원했다.
눈을 감았다 뜨니 오전 8시 30분이다. 뭔놈의 잠 귀신이 붙었나? 이번 여행에서 나는 머리가 땅에 닿기만 하면 깊은 잠에 빠져 들곤 했다. 해발 3,600m가 넘는 고산지대에서 이렇게 편하게 잔 걸 보면, 앞으로도 심한 고산증세를 느낄 것 같지 않다.
바깥 풍경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고산지대에 적응을 하려면 첫날은 무리하면 안된다고 했는데. 호텔 앞 포탈라궁이 궁금해서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어젯밤 조명을 훤히 밝힌 포탈라궁을 처음 보았다. 택시 안에서 스치면서 본 풍경이지만 성스럽고 웅장한 모습에 입이 딱 벌어졌다.
단단히 차려입고 호텔 밖으로 나갔다. 호텔 바로 맞은편에 있는 포탈라궁의 옆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포탈라궁 담벼락 아래로 줄을 지어 걸아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왠지 나도 그 인파 속으로 들어가야 동화되어야 할 것 같았다. 꼭 그래보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걸음 속도에 나의 걸음 속도를 맞춘다. 그렇게 그들의 뒤를 나랐다.
핸드폰의 시계는 오전 9시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자연의 시간으로 본다면 라싸는 좀더 이른 시각이다. 불과 30분 전까지만 해도 어스름이 짙게 깔려 있던 새벽녘이었다. 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자신의 신앙에 따라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 열심히 마니차를 돌리며 걷는 여인, 염주를 하나씩 돌려가며 끊임없이 나즈막하게 육자진언을 외는 할아버지와 아저씨들.
웅장하고 화려한 포탈라궁에 대한 경외심보다, 소박한 차림으로 소박한 기도를 할 것 같은 티베트인들에게 경외심이 우러났다.
잠시후 온전한 모습으로 포탈라궁이 한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마음이 든다. 현실이 아닌 꿈 속에서 환영(幻影)을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가슴이 두둥실 하늘 위로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고산증이 아니었다. 늘 사진에서만 보던 포탈라궁을 직접 눈으로 보고 있다는 감동과 이른 아침부터 포탈라궁을 에워싸고 순례를 하는 티베트인들의 모습이 겹쳐 순간적으로 든 감정이었다.
잠시 가던 길을 멈춰 섰다. 이렇게 아무런 준비도 없이 포탈라궁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이 벅찬 감동을 지금 이 순간, 누군와 함께 나누고 싶었다.
“여보, 나야. 나 지금 포탈라궁 앞이야.”
“벌써 포탈라궁을 보러 간거야? 이렇게 일찍?”
“호텔 창문으로 보니까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포탈라궁을 따라서 걷잖아. 밖이 너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아! 여보, 티베트는 정말 감동이다. 감동이야.”
“그렇지? 사천성의 동티베트 지역이랑은 또 다른 느낌이지?”
“응, 그럼. 나 정말 티베트 여왕이 되고 싶어.”
“뭐라고? 시집을 두 번 가고 싶다고?”
이건 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내가 무슨 문성공주라고 이 티베트에 시집을 온단 말인가?
“아니, 티베트 여행상품을 한국에서 제일 잘 파는 티베트 여왕이 되고 싶다고!”
“그렇게 좋아?”
“응, 아무래도 집에 가기 싫을 것 같아. 한 달쯤 있었으면 좋겠어. 근데 티베트 여왕이 되려고 해도 이제 돌아가면 난 다시 백조네. 하하하.”
나를 ‘돌아온 백조’로 만들어 준 MR.뚱과 전화를 끊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어디서, 언제 끝나는 건지도 모른 채 순례자들의 뒤를 따랐다.
해가 곧 산 위로 밝게 떠오를 것 같았다. 사방이 병풍처럼 산으로 둘러싸인 고원분지. 하루를 순례로 시작하는 거리에서 만난 티베트인. 마치 라싸시내를 굽어 살피듯 산 위에 웅장하게 세워진 포탈라궁. 그리고 올라갔다가는 미끄러져 내릴 듯한 민둥산이 라싸를 에워싼 풍경, 그리고 그 위로 해가 떠오르기 직전의 변화무쌍한 하늘까지. 라싸에서 처음 맞은 아침은 온통 설레임이었다.
그리고 감동이었다. 포탈라궁을 정면에서 볼 수 있는 자리. 그곳에서 순례길을 따라 걷던 티베트인들이 잠시 멈춰섰다. 그리고 포탈라궁을 향해 오체투지를 한다. 라싸에서 처음 목격한 오체투지였다. 이마, 양팔과 팔꿈치, 양발과 무릎을 땅에 닿게 절을 하는 모습. 진심과 정성을 다해 오체투지를 하는 티베트인들의 모습은 신성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뻔 했다. 정확하게 오체투지가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나도 티베트인들을 따라 오체투지를 할 뻔했다. 정말 주책이다. 사진을 찍는 내가 방해가 될까봐 조심스러웠다.
오체투지를 하는 티베트인들의 건너편, 정확히 포탈라궁의 정면을 볼 수 있는 맞은편에는 라싸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 있다. 오성기가 휘날리는 휑한 인민광장. 그 앞으로는 오가는 사람도 드물었다. 오성기를 호위하는 중국인민해방군은 맞은편 포탈라궁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순례자들을 따라 포탈라궁 정문 앞까지 갔다가 발길을 되돌리기로 했다. 워낙 긍정적인 성격이기도 하지만, 또 무지 감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딴지여사가 아니던가. 라싸에서 맞은 첫날 아침부터 주체할 수 없는 이 벅찬 감동을 앞으로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너무 쉽게 감동하고 너무 빨리 실망하는 게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그리고 라싸에서 첫 방문지는 꼭 티베트인들의 성지인 조캉사원을 보고 싶었다. 포탈라궁이 티베트를 떠올릴 때 가장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곳이지만, 종교적 향기가 짙은 티베트에서는 먼저 사원을 방문하고 싶었다. 포탈라궁은 말 그대로 궁전이었고, 나 같은 소시민들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던 곳은 아니지 않은가? 또 티베트의 상징인 만큼, 포탈라궁은 티베트를 떠나기 전에 가장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다. 아껴두고 싶은 마음도 컸다.
어느새 날이 완전히 밝았다. 새파랗게 변한 하늘아래 포탈라궁은 이른 아침에 바라본 모습보다 더 성스럽게 느껴졌다. 이 풍경 하나만으로도 내가 티베트에 온 이유는 충분했다. 왜 그렇게 사람들이 티베트에 열광하는지 알 것 같았다.
되돌아서 가려니 아쉽다. 그리고 MR.뚱이 순례길은 꼭 순례자들을 따라서 걸어야지, 반대방향으로 걷는 게 아니라고 했는데. 정말 나와 같이 반대 방향으로 걷는 사람은 좀처럼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벅찬 감정을 진정시키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 티베트인들에게 종교는 일상이었다. 자칫 억지스럽거나 오바스럽게 보일 수 있는 풍경이 이곳에 오면 자연스럽게 마음으로 받아들여 진다.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매일 밥을 먹고 배설을 하는 생리적 현상과 다를 게 없는 일상. 순례길을 따라 한 손으로는 마니차를 돌리고, 입으로는 끊임없이 육자진언을 외다가도 신기한게 있으면 멈춰 섰다. 싸게 파는 물건이 보이자 너도나도 모여들어 순례길은 어느새 왁자지껄한 시장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티베트의 매력은 이런게 아닐까?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러나 나와는 판이하게 다른 속도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는 이곳. 평지에서 늘 걷던 습관인 종종걸음을 늦출 수 있는 고원도시. 걸음을 늦추고 나니 자연스레 주변을 좀더 여유있게 바라보게 된다. 시선을 따라 마음에도 여유가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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