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소설을 쓰려고 했던 적이 있다. 그저 사람들이 많이 사 읽는, 장르나 작품성 따위 아무 상관 없는 소설 말이다. 그런 욕구가 무엇에서 시작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대학 시절에 대한 반발이었는지, 작가가 되고 싶은 출세욕이었는지, 영화이 멋있어서였는지, 이 모든 것들이 적절히 비벼진 것이었는지 말이다.
새로운 사람들을 알게 되는 일이 즐겁지 않았다. 빠르게 실망하게 되니까 말이다. 열 사람과 한 마디씩을 하느니 차라리 한 사람과 열 마디를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비록 그 한 사람에게 실망을 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슬픔은 가거나 숨으니까. 그래서 지금의 나에겐 별로 중요치 않은 그 기억의 의미를 마음대로 정리했다. 많은 사람들과 — 소통, 이 단어가 적절하지만 악취 나는 클리셰가 되어 버렸다. 상호작용, 이 단어는 기계 냄새가 난다 — 특별하게 사귀고 싶어서 였다고.
사람들을 연결해 주거나 사귀도록 해주는 인터넷 서비스도 만들어 봤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또는 ‘인사는 할 수 있으나 알 수는 없는 서비스’라고 하는 것들이다. 사람의 가능성 또는 변덕은 예측할 수 없어서 지금은 꽤 쓸모있게 느껴지는 서비스들이 있다. 몇몇 서비스들은 사람을 사귀고 싶은 내 욕구를 적당히 만족시켜줌과 동시에 실망하는 것이 피곤스러워 ‘이 이상은 접근금지’ 푯말을 세워두기에 알맞아 열심히 쓰고 있다. 그 속에서 하나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연결하(되)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슬프면서도 피할 수 없는 속성이구나라는 것, 이제 사람뿐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내는 유무형의 것들도 연결할(될) 수 있는 요소를 박아 넣어야 하겠구나라는 것이다.
그리고 난 글, 사진, 영상을 어떻게 그렇게 쓰고 찍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기술적인 측면이 아니라 각 매체의 속성 내에서 말이다. (다음회에 계속)











